이카로스(Icaros)의 날개여도 좋다. 태양빛에 밀랍이 녹아 추락해도 괜찮다. 할 수만 있다면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날고 싶다. 인간의 욕망도 신을 닮았나보다. 누구나 자신의 몸에 맞는 날개를 갈구한다. 날개에 대한 욕망은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김선우 그림의 출발도 날개에 대한 단상이다. 원하는 곳에 데려다 줄 날개를 가진 ‘새’를 동경했다. 날개는 자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김선우는 인간 욕망의 속성을 가장 쉽고 명료한 어법으로 그려낸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음에도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대개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김 작가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지 못하고 안주하는 현대인의 속성을 초기 작품에 ‘새 머리를 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그러던 중 숙명적으로 도도새(Dodo Bird)의 에피소드를 만났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살았던 도도새, 포르투갈어로 ‘어리석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도도새는 먹이가 풍족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결국 날개가 퇴화되었다. 날지 못한 도도새는 어느 날 찾아든 스페인 배가 정착하며 멸종을 맞게 되었다. 더 이상 새가 아니라 살이 통통하게 올라 게으른 먹잇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선우는 도도새의 행동 양식에서 새로운 도전의지를 망각한 현대인의 삶을 발견한 것이다. 그 길로 도도새의 흔적을 찾아 모리셔스 섬으로 한 달 간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했다. 모리셔스의 복잡한 정글모습 역시 현대의 도시사회 구조를 닮았음을 깨닫고 작업방향의 모티브를 정리하게 된다.
“다양하고 새로운 영감들을 여행을 통해 획득하는 편입니다. 작업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 또한 모리셔스에서의 한 달 간의 여행에서 비롯됐습니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속성들(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낯설게 보기, 노마디즘 등) 역시 작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전하는 의미’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개 ‘미지의 바람과 꿈’을 나만의 조형언어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 주인공은 도도새입니다.”
김선우가 말하는 여행의 속성 중 ‘노마디즘(nomadisme)’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나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 가려는 사고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김선우는 그 연장선으로 ‘방황’이란 키워드를 내세운다. 그에게 방황이란 일탈이 아닌, 정해진 길을 벗어나 ‘무수한 가능성과 마주하는 행위’로써의 개념을 포함한다. 쉴 새 없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도도새의 여정은 그 도도새를 통해 ‘이유 있는 방황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재창조한 설정이다.
김선우 그림의 배경으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정글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현대사회를 의미한다. 길을 잃기 쉬운 복잡한 정글 도시를 노니는 도도새 무리 역시 현대인을 주인공으로 빗댔다. 먼 과거에 멸종된 도도새의 서사를 통해 ‘지금 현재의 동시대적 감성과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아마도 도도새의 모습에서 보는 이의 개별적인 경험에 따라 자신만의 특별한 서사를 재발견 시켜주는 점이 김선우 그림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간혹 익숙한 명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 역시 지나간 역사 속 장면들이 곧 ‘또 다른 현재와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전하는 그만의 메타포 화법이다.
흔히 진화의 반대말을 퇴화로 아는 이가 많다. 진화는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고, 퇴화는 있던 것을 없애는 과정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을 없애가는 과정 또한 ‘발전적 선택’의 진화로 볼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계속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능이 약화된 상태로 남겨둔 ‘흔적기관’도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겐 귀를 움직이는 근육인 이개근(동이근), 페로몬 향을 맡았던 야콥슨 기관이나, 꼬리뼈와 사랑니 등이 속한다. 마치 전쟁의 전술적 퇴각이나 후퇴처럼, 퇴화도 ‘발전적 진화 과정’ 중 하나인 셈이다.
날개가 퇴화되어 멸종했다고 알려진 도도새 역시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오히려 ‘선택적 진화’를 통해 날개를 버린 것이고, 주변 환경에 가장 이상적으로 적응해 잘 살았던 성공사례의 표본일 수도 있겠다. 그 평화로움을 인위적으로 깬 인간의 침입이 잘못이지, 나름의 자연법칙에 순응했던 도도새의 선택이 어리석었던 것이 아니다. 김선우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도도새의 일상이 더욱 폭넓고 남다르게 해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치 김 작가의 꿈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16세기 이전의 모리셔스 이상향 풍경을 동경해 보여주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떠도는 인간’이란 뜻이며, 인간은 방황 끝에 성장해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의 정주사회에서 방황은 부덕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히려 호모 비아토르적인 정신이 확장될 때, 세상의 다양성과 관용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강력한 계기를 제공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는 제가 작업을 해 나가는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합니다.”
김선우에게 ‘여행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연민이며 교감의 대상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도도새 캐릭터는 대개 짝을 이루거나 무리를 짓고 있다. 간혹 홀로 있더라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는 어떤 이야기를 단정하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한 작가의 배려로 여겨진다. 확장된 소통과 교감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평범한 도리인 ‘기본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과제이다. 김선우의 그림은 인생의 주제의식을 누구나 편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참으로 친근하게 표현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김선우는 ‘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고, 언제나 움직이고 있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움직이는 일상’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업하는 시간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바로 그만의 독서법이다. 작업하는 동안 책을 읽어주는 앱을 통해 ‘듣는 독서’를 즐긴다. 주로 역사, 인문, 추리소설 분야의 책들을 선호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기 좋은 장르이다. 작업이 조금씩 진척되는 동안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처럼, 그만의 도도새와 미지의 상상여행을 마음껏 즐기게 된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생명은 찰나의 순간이다. 그 덧없이 짧은 순간에 인생 전부가 녹아들었다. 김선우는 모든 생명체가 생멸의 순환을 반복하고, 무한한 환상적 여행을 이어가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주고 있다. 도도새의 작은 몸짓에서도 깊고 긴 여운이 전해지는 이유는 작가의 자전적 고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꽃들이 머리를 쳐든 것처럼, 김선우의 그림에선 선한 의지의 기운이 충만하다.
김선우의 도도새, 미지의 상상여행 동행자
글_김윤섭(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대표,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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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는 인간 욕망의 속성을 가장 쉽고 명료한 어법으로 그려낸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음에도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대개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김 작가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지 못하고 안주하는 현대인의 속성을 초기 작품에 ‘새 머리를 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그러던 중 숙명적으로 도도새(Dodo Bird)의 에피소드를 만났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살았던 도도새, 포르투갈어로 ‘어리석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도도새는 먹이가 풍족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결국 날개가 퇴화되었다. 날지 못한 도도새는 어느 날 찾아든 스페인 배가 정착하며 멸종을 맞게 되었다. 더 이상 새가 아니라 살이 통통하게 올라 게으른 먹잇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선우는 도도새의 행동 양식에서 새로운 도전의지를 망각한 현대인의 삶을 발견한 것이다. 그 길로 도도새의 흔적을 찾아 모리셔스 섬으로 한 달 간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했다. 모리셔스의 복잡한 정글모습 역시 현대의 도시사회 구조를 닮았음을 깨닫고 작업방향의 모티브를 정리하게 된다.
“다양하고 새로운 영감들을 여행을 통해 획득하는 편입니다. 작업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 또한 모리셔스에서의 한 달 간의 여행에서 비롯됐습니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속성들(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낯설게 보기, 노마디즘 등) 역시 작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전하는 의미’에 대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개 ‘미지의 바람과 꿈’을 나만의 조형언어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 주인공은 도도새입니다.”
김선우가 말하는 여행의 속성 중 ‘노마디즘(nomadisme)’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나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 가려는 사고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김선우는 그 연장선으로 ‘방황’이란 키워드를 내세운다. 그에게 방황이란 일탈이 아닌, 정해진 길을 벗어나 ‘무수한 가능성과 마주하는 행위’로써의 개념을 포함한다. 쉴 새 없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도도새의 여정은 그 도도새를 통해 ‘이유 있는 방황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재창조한 설정이다.
김선우 그림의 배경으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정글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현대사회를 의미한다. 길을 잃기 쉬운 복잡한 정글 도시를 노니는 도도새 무리 역시 현대인을 주인공으로 빗댔다. 먼 과거에 멸종된 도도새의 서사를 통해 ‘지금 현재의 동시대적 감성과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아마도 도도새의 모습에서 보는 이의 개별적인 경험에 따라 자신만의 특별한 서사를 재발견 시켜주는 점이 김선우 그림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간혹 익숙한 명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 역시 지나간 역사 속 장면들이 곧 ‘또 다른 현재와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전하는 그만의 메타포 화법이다.
흔히 진화의 반대말을 퇴화로 아는 이가 많다. 진화는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고, 퇴화는 있던 것을 없애는 과정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을 없애가는 과정 또한 ‘발전적 선택’의 진화로 볼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계속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능이 약화된 상태로 남겨둔 ‘흔적기관’도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겐 귀를 움직이는 근육인 이개근(동이근), 페로몬 향을 맡았던 야콥슨 기관이나, 꼬리뼈와 사랑니 등이 속한다. 마치 전쟁의 전술적 퇴각이나 후퇴처럼, 퇴화도 ‘발전적 진화 과정’ 중 하나인 셈이다.
날개가 퇴화되어 멸종했다고 알려진 도도새 역시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오히려 ‘선택적 진화’를 통해 날개를 버린 것이고, 주변 환경에 가장 이상적으로 적응해 잘 살았던 성공사례의 표본일 수도 있겠다. 그 평화로움을 인위적으로 깬 인간의 침입이 잘못이지, 나름의 자연법칙에 순응했던 도도새의 선택이 어리석었던 것이 아니다. 김선우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도도새의 일상이 더욱 폭넓고 남다르게 해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치 김 작가의 꿈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16세기 이전의 모리셔스 이상향 풍경을 동경해 보여주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떠도는 인간’이란 뜻이며, 인간은 방황 끝에 성장해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의 정주사회에서 방황은 부덕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히려 호모 비아토르적인 정신이 확장될 때, 세상의 다양성과 관용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강력한 계기를 제공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는 제가 작업을 해 나가는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합니다.”
김선우에게 ‘여행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연민이며 교감의 대상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도도새 캐릭터는 대개 짝을 이루거나 무리를 짓고 있다. 간혹 홀로 있더라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는 어떤 이야기를 단정하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한 작가의 배려로 여겨진다. 확장된 소통과 교감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평범한 도리인 ‘기본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과제이다. 김선우의 그림은 인생의 주제의식을 누구나 편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참으로 친근하게 표현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김선우는 ‘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고, 언제나 움직이고 있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움직이는 일상’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업하는 시간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바로 그만의 독서법이다. 작업하는 동안 책을 읽어주는 앱을 통해 ‘듣는 독서’를 즐긴다. 주로 역사, 인문, 추리소설 분야의 책들을 선호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기 좋은 장르이다. 작업이 조금씩 진척되는 동안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처럼, 그만의 도도새와 미지의 상상여행을 마음껏 즐기게 된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생명은 찰나의 순간이다. 그 덧없이 짧은 순간에 인생 전부가 녹아들었다. 김선우는 모든 생명체가 생멸의 순환을 반복하고, 무한한 환상적 여행을 이어가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주고 있다. 도도새의 작은 몸짓에서도 깊고 긴 여운이 전해지는 이유는 작가의 자전적 고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꽃들이 머리를 쳐든 것처럼, 김선우의 그림에선 선한 의지의 기운이 충만하다.
김선우의 도도새, 미지의 상상여행 동행자
글_김윤섭(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대표, 미술사 박사)